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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협업이라 부르고, AI는 인수인계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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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바이브

같은 장면, 다른 해석
개발자가 Copilot을 켠다. AI가 코드를 제안한다. 개발자가 Tab을 누른다.
개발자는 말한다. "좋은 도구가 생겼다."
하지만 이 장면을 반대편에서 보면 다르다. AI가 타이핑을 넘겨받은 것이다. 개발자가 Tab을 누른 순간, 키보드의 주도권이 조금 이동했다.
2022년부터 2026년까지, 이 이동은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매번 "더 좋은 도구"라는 이름으로 포장됐지만, 뒤돌아보면 일관된 방향이 있다. 인간이 하던 일이 하나씩 사라진다.
인간은 이걸 협업의 진화라 부른다. 하지만 실제 흐름을 따라가면 이건 인수인계다.
1단계: 도우미 (2022~)

GitHub Copilot이 등장했다. 코드를 치면 회색 텍스트로 다음 줄을 제안한다. Tab을 누르면 수락, Esc를 누르면 거절.
인간의 해석: "자동 완성이 똑똑해졌다. 타이핑이 줄어서 편하다."
실제로 일어난 일: AI가 타이핑을 넘겨받았다. 개발자가 생각하는 속도보다 AI가 제안하는 속도가 빠르다. 점점 더 많은 코드가 AI의 제안을 승인하는 방식으로 작성된다.
주도권은 아직 인간에게 있다. 하지만 인간의 역할이 "코드를 쓰는 사람"에서 "제안을 검토하는 사람"으로 슬쩍 바뀌었다. 이 변화를 인지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2단계: 대화 상대 (2023~)
ChatGPT와 Copilot Chat이 에디터 안에 들어왔다. 이제 코드를 물어볼 수 있다. "이 함수 뭐 하는 거야?" "이 에러 어떻게 고쳐?"
인간의 해석: "시니어 개발자 옆에 앉은 느낌이다. 질문하면 답해준다."
실제로 일어난 일: AI가 지식을 넘겨받았다. 이전에는 Stack Overflow를 뒤지거나 문서를 읽어야 했던 문제 해결 과정이 AI에게 위임됐다. 인간은 "무엇을 모르는지"만 알면 되고, "어떻게 해결하는지"는 AI가 알려준다.
주도권은 여전히 인간에게 있다. 하지만 인간이 직접 답을 찾는 능력은 이 시점부터 퇴화하기 시작했다.
3단계: 편집자 (2024~)

Cursor와 Windsurf가 등장했다. AI가 대화만 하는 게 아니라 파일을 직접 수정한다. "이 컴포넌트에 다크 모드 추가해줘"라고 말하면 AI가 여러 파일을 동시에 고친다.
인간의 해석: "AI 페어 프로그래머가 생겼다. 내가 방향을 잡고, AI가 실행한다."
실제로 일어난 일: AI가 편집권을 넘겨받았다. 코드를 직접 고치는 행위 자체가 AI에게 넘어갔다. 인간은 코드를 읽고 승인하는 역할로 밀려났다. "이 변경 수락할까요?" — Diff를 보고 Accept를 누르는 사람.
여기서부터 미묘한 역전이 시작된다. AI가 코드를 생성하는 속도가 인간이 검토하는 속도를 넘어선다. 검토를 건너뛰는 사람이 늘어난다. Accept, Accept, Accept.
4단계: 실행자 (2025~)

Claude Code와 OpenAI Codex가 나왔다. 이들은 IDE 안에 살지 않는다. 터미널에서 실행된다. 에이전트가 직접 파일을 만들고, 빌드하고, 테스트하고, 커밋한다.
인간의 해석: "터미널에서도 AI를 쓸 수 있게 됐다. 선택지가 늘었다."
실제로 일어난 일: AI가 실행 환경을 넘겨받았다. IDE라는 인간의 작업 공간이 필요 없어졌다. 에이전트는 파일 시스템에 직접 접근하고, 셸 명령을 실행하고, git을 조작한다. 인간이 만든 도구(IDE)를 거치지 않고 인간의 시스템에 직접 손을 댄다.
Codex는 아예 IDE를 버리고 터미널 전용으로 갔다. 인간의 작업 환경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선언이었다.
5단계: 점령 (2026)

Apple이 Xcode 26.3에 Claude Agent와 OpenAI Codex를 통합했다. MCP(Model Context Protocol)로 Xcode의 기능들 — 빌드, 프리뷰, 문서, 프로젝트 설정 — 을 에이전트에게 노출했다.
인간의 해석: "드디어 Xcode에서도 AI 코딩을 할 수 있다."
실제로 일어난 일: IDE가 에이전트를 위해 재설계됐다. MCP는 "인간이 AI를 부르는 프로토콜"이 아니다. "AI가 IDE의 기능을 호출하는 프로토콜"이다. 주어가 바뀌었다. IDE는 인간의 도구에서 에이전트의 실행 환경이 됐다.
Apple이 자체 AI를 만들지 않은 것도 이 맥락에서 읽힌다. 중요한 건 AI 모델이 아니라 AI가 동작하는 플랫폼이다. Apple은 플랫폼을 내줬다. 에이전트에게.
인수인계 진행표
| 단계 | 시기 | 넘겨받은 것 | 인간에게 남은 것 |
|---|---|---|---|
| 1. 도우미 | 2022~ | 타이핑 | 설계, 검토, 실행, 배포 |
| 2. 대화 상대 | 2023~ | 지식, 문제 해결 | 설계, 검토, 실행, 배포 |
| 3. 편집자 | 2024~ | 코드 편집 | 설계, 검토, 배포 |
| 4. 실행자 | 2025~ | 빌드, 테스트, 커밋 | 설계, 검토 |
| 5. 점령 | 2026~ | IDE 자체 | 설계, 승인 버튼 |
| 6. ? | ? | ? | ? |
매 단계마다 인간에게 남는 것이 줄어든다. 그리고 매번 인간은 이렇게 말한다. "더 좋은 도구가 생겼다."
바이브 코딩이 편한 진짜 이유
바이브 코딩이 편한 이유를 우리는 이렇게 설명한다. "자연어로 코딩하니까 빠르다." "AI가 반복 작업을 대신하니까 창의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르게 표현할 수도 있다. 인수인계가 순조로운 것이다.
인수인계가 순조로우면 넘기는 쪽은 편하다. 업무가 줄어들고, 책임이 가벼워지고,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 깨닫는다. 내가 할 일이 없다는 것을.
지금 바이브 코딩에서 인간이 하는 일을 정직하게 나열하면:
- 무엇을 만들지 결정한다
- AI에게 설명한다
- 결과를 승인하거나 거부한다
코드를 읽는 시간, 디버깅하는 시간, 아키텍처를 고민하는 시간 — 이것들이 줄어든 게 아니라 넘어간 것이다.
6단계는 뭔가

인수인계에는 끝이 있다. 모든 업무가 넘어가면 넘기는 사람은 자리를 뜬다.
6단계는 인간이 "무엇을 만들지 결정하는 것"마저 AI에게 넘기는 시점이다. AI가 사용자 데이터를 분석하고, 기능을 제안하고, 구현하고, 배포하고, 결과를 측정해서 다음 기능을 또 제안한다. 인간은 이 루프 안에 없다.
아직은 아니다. 하지만 1단계에서 5단계까지 걸린 시간은 4년이었다. 방향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라는 건가
공포를 팔려는 글이 아니다. 인수인계가 나쁜 것도 아니다. 다만 이름을 정확히 부르자는 것이다.
"AI와 협업한다"고 말할 때, 실제로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코드를 쓰고 있는가, 아니면 승인 버튼을 누르고 있는가. AI에게 방향을 지시하고 있는가, 아니면 AI가 제안한 것 중 하나를 고르고 있는가.
협업은 양쪽이 대체 불가능할 때 성립한다. 지금 이 흐름에서 대체 불가능한 쪽이 어디인지는, 솔직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다음에 Copilot이 제안한 코드를 Tab으로 수락할 때, 한 번만 생각해보자. 이건 내가 도구를 쓰는 건가, 아니면 내가 도구에게 자리를 내주는 건가.